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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틀담의 꼽추, 누가 괴물이고 누가 사람인가?

by 유용한 이야기 2022. 3. 31.

노틀담의 꼽추 포스터

 

 

그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던 꼽추의 이야기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거기에는 한 존재가 지내며 매일 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 존재는 바로 꼽추인 '콰지모토'. 어쩌다 그는 이곳에 갇혀 지내게 된 것인가? 사건의 발단은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시들은 파리의 법무장관인 '클로드 프롤로'에게 쫓기며 파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 클로드 프롤로에게 발각되어 버린다. 어느 여성 집시만이 끝까지 피해 달아나는데 그녀의 눈앞에는 노트르담의 성당이 나타난다. 그녀는 성당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판사 프롤로가 그녀에게 다가왔고 결국 그녀는 목숨을 잃는다. 그때 그녀의 품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프롤로는 보자기에 덮인 아기의 모습을 보고는 '괴물이다. 당장 죽여버려야 해.'라며 아기를 우물에 던지려 한다. 그 순간 누군가 '그만!'이라고 외친다. 그 존재는 바로 노트르담 성당의 신부였다. '여기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라고 외치자 프롤로는 '난 그저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라며 말하곤 아기를 괴물이라 칭하며 지옥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신부는 외친다. '그렇게 자신의 눈을 속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노트르담의 수많은 눈을 속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그러자 프롤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기에 신부에게 다시 물어본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신부는 데려가서 아기를 잘 기르라고 말하고 이미 죽어버린 집시의 시체를 들어 올린다. 그러자 프롤로는 대신 조건이 있다면서 신부한테 부탁한다. '이 아기를 여기 성당 꼭대기에 기르게 해 주시오.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언젠가 이 것이 나한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게 그 아기는 '콰지모도'라는 이름을 가지며 노트르담 성당의 종 치기로서 살아간다. 한 번도 성당밖에 나오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되어버린 콰지모도. 그는 평소처럼 바깥 풍경을 구경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그는 더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바보들의 축제'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축제를 보며 같이 즐기고 참여하고 싶다고 느끼는 콰지모도. 그러나 그걸 프롤로가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계획을 세운다. 모습을 가린 다음에 몰래 구경하고 돌아오기로 말이다. 그렇게 변장을 마친 콰지모도는 마침내 축제 안에 들어가는데 깜짝 놀라고 만다. 이번 축제는 프롤로도 공개 참여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무사히 들키지 않고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원작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선 이 영화의 원작은 1831년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작성한 장편소설이다. 그리고 제목도 '노트르담의 꼽추'가 아닌 '파리의 노트르담'이다. 노틀담의 꼽추는 그저 영어권에서 번역한 것을 사용한 것이다. 또 한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영화에서는 콰지모도가 중점이다. 그리고 그를 도와주는 집시여성 '에스메릴다', 프랑스의 장군 '피버스'가 등장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허나 원작에서는 다르다. 원작에선 콰지모도는 처음과 끝부분에만 잠깐 나오고 큰 비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에스메릴다와 프롤로의 이야기로 소설의 초점을 맞춘다. 에스메릴다의 인생, 그리고 프롤로의 개인의 고뇌가 중점으로 소설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점이 있다면 영화에서 프롤로는 에스메릴다를 죽이려하고 실제로 에스메릴다는 실신해버렸으나 콰지모도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결국 교수형에 처해 에스메릴다는 죽게된다. 영화에 비해 원작은 더욱 비극적이다. 그리고 결말 역시 다르다. 영화결말에서 콰지모도는 마침내 사람들과 함께하며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프롤로를 죽이고 사라지며 시간이 지나고 교수형에 처한 시신을 묻다가 에스메릴다의 해골을 꼭 껴앉은 채 유골로 발견되었다고 말하며 마무리한다. 큰 부분만 이 정도이고 세세한 거 다 합치면 여러 부분이 다르다.

 

콰지모도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실 콰지모도가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고통받은 이유는 단순히 그의 외모뿐만은 아니다. 바로 그가 집시의 자식이었기 때문도 포함된다. 이 작품 배경에서 집시는 벌레이고 나라를 망치는 적이라고 묘사된다. 즉 신분만으로 그들이 악당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법무장관인 프롤로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이 더욱 잔인하며 괴물의 모습에 가깝다. 그리고 콰지모도는 프롤로에게 말하는 대사가 있다. '세상이 어두운 건 당신 같은 인간들이 있어서야!'라고 말이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물어볼 수 있다. 누가 과연 진짜 괴물인가?라고 말이다. 외모와 신분, 직업이 하찮은 사람들이 괴물인 것인가? 멀쩡한 외모와 직업을 가졌으나 그들을 낮게 보며 괴물이라고 욕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괴물인 것인가? 우리는 이걸 보며 프롤로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괴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짧은 시간만 주었으면 얼굴이나 신분 만으로 처음에 그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며 우리와 같은 존재이니 함께 더불어 살아가 야한 다는걸 우리는 알 수 있다. 한가지 후기를 더 작성하자면 사실 이 영화는 '디즈니에서 가장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치만 원작에 비하면 밝고 희망찬 이야기라는것을 알수있다.